직업의 회의감 - 간호사
현재의 병원에서 2년 반 간호사로 근무 중이다. 20대의 내가 얼렁뚱땅 살다보니, 어쩌다보니 하고 있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출퇴근을 하며 회의감도 많이 온다. 다음은 내가 병원에서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들이다.
1. 가스라이팅 - 선배 간호사 또는 의사에게 어떤 지시를 받을 때, 어떠한 구체적인 근거 없이 ' ~ 해야 한다 '는 어조의 지시를 받을 때, 이 세상에서 '나'는 사라지고 나는 하나의 소모품이 된다.
2. 자아 실현이 없다 - 내가 병원에서 하는 행동들은 나의 가치관, 옳다고 생각하는 것, 꿈 등을 실현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다. 그저 '월급'과 '연금'을 받기 위해 시간 및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일 뿐이다.
3. 나보다 더 많은 권한과 높은 직급의 사람이 무능하게 느껴질 때 - 선배 간호사, 의사, 파트장 등 나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들 중에는 나보다 무능하게 느껴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들의 무능함과 관계없이 그들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4. 여초 사회 - 남자가 정상적으로 근무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제약들이 있다. 여초는 그냥 최악의 환경이다.
5. 발전이 없는 직업 - 기본적으로 병원에서는 매출, 성과 등의 부담을 주지 않는다. 특히 간호사에게는 수익과 관련하여 생각할 일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능력을 키울 것도 없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어진 업무가 달라지는 것도 없다. 50살이나 25살이나 같은 일을 하며 조금의 월급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달리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으로 공부를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곧 사회적 성공으로 절대 이어지지 않는다.
6. 3교대 - 야간 근무는 과학적으로 인체에 무척 해롭다는 것이 밝혀져 있다. 심혈관계 질환은 물론, 암까지 유발하는 요소로 알려져 있다. 3일 연속 야간 근무를 하고 2일 쉬고 다시 아침 6시 30분에 출근하는, 'NNNOOD ~' 근무는 최악이다. 이틀 간의 휴일이 휴일이 아니다. 거의 매 주, 매 달 시차 적응을 하고 있는 셈이다.
7. 집단 무지성 - 간호사라는 직업은 하고 싶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지방의 아무 대학 간호학과를 다니고 국가고시(허수 제외 합격률 100% 근접)를 마치면 면허가 주어진다. 이로 인해 전반적인 간호사 집단은 무능함에 가깝고 (대한간호협회와 의사협회의 행보를 비교해보면 처절하게 느껴진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개인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무지성 집단에 속해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이미지는 실추되기 쉽다.
당장에 떠오르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이다. 그렇다면 장점은 없을까? 장점은 다음과 같다.
1. 무능해도 된다 - 본인이 무능하고 일을 열심히 하지도 않아도, 시간이 흐르고 나이만 먹으면 알아서 월급도 오르고 (호봉제의 경우) 아랫 사람들도 생겨난다. 절대 해고당할 일도 없고 승진에 욕심내지 않아도 된다.
2. 정시 출퇴근 - 3교대인 만큼, 하루에 딱 8시간만 일한다. 심지어 식사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24시간 중 가장 적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직업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퇴근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특근신청은 잘 받아들여지는 편이다.
3. 건강 -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부모님이 아프실 때 모든 조치를 다 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이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직업의 경우, 아프면 병원에 가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지만, 병원은 절대 모든 일반인을 '잘' 치료해주지 않는다. 가족들이 의료와는 거리가 먼 경우, 환자로서의 권리가 상당히 제약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러한 장단점을 바탕으로 나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에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위의 단점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내가 왜 이 일을 그만두려는 것인지 확고히 하고, 더 나은 미래를 가꾸기 위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